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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정책

의도가 좋다고 말과 행동이 용서 되지는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육아연구소 딸만셋입니다.

오늘 내용은 요즘 육아관련해서 가장 인기있으신

오은영 박사님의 '오은영의 화해'라는 책의 일부분입니다.

 

왜 부모님의 기억과 제 기억이 다를까요?

우리가 어릴 적 부모님께 서운하거나 상처받았던 일을 이야기하면,

부모님들은 모른다거나 그런 기억이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또는 반대로 부모님들의 기억이 내가 기억하는 내용과 다르거나 또는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주관적입니다.

같은 사건을 보았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합니다.

1개의 사건이지만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죠.

 

이것은 기억은 인지 기능이면서도 정서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거억하는 순간의 정서적 반응에 따라 잊혀지기도 하고 왜곡되거나 변형되기도 합니다.

 

부모가 공부를 안 하는 아이에게

"너 이렇게 해서 대학에 가겠니?" 라고 말했을 때,

아이가 이 말에 굉장히 기분이 상했다면,

"이 따위로 해서 대학이나 갈 수 있겠어?" 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기억은 많이 경험해본 쪽으로 더 강하게 남습니다.

아이가 어떤 일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때

부모의 반응은 보통 두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지금 네가 실패를 맛본 것은 네가 도전했기 때문이야.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 또 도전해 보렴.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단다."

 

"야, 너 또 실패야? 너는 제대로 하는게 뭐가 있니?"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입니다.

부모-자녀의 관계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긍정적인 대화를 많이 했다면

이후 기억도 긍정적으로 기억되는 부분이 많지만

부정적인 대화를 많이 했다면

나중에 기억도 부정적으로 기억에 남게 됩니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긍정적인 대화, 부정적인 대화 두가지 모두

부모는 같은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합니다.

 

공부를 안하는 고3 자녀에게

 

"평소에 네가 열심히 하는거 잘 아는데,

이상하게 고3 엄마들인 애들이 책상에서 멀어져 있으면 불안하고 걱정되더라"

 

"야! 고3이면 더 열심히 해야 하는거 아니니? 네가 그럴 때니?"

 

전자와 후자 둘 다 자녀가 공부를 좀 했으면 하는 같은 의도로 한 말입니다.

하지만 부모는 자녀가 공부를 했으면 하는 좋은 의도만 기억하지만

후자의 경우 자녀는 '왜 나를 못 믿어 줄까'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출발은 좋은 의도였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의도가 좋다고 해서, 모든 말과 행동이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의도라면 받는 사람도 그렇게 느끼도록 충분히 좋게 말해야 합니다.

편안한 상황에서 좋게 말해야, 아이가 부모의 깊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습니다.

 

너무 속상한데 기억이 안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면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대화의 핵심은 그런 기억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이든 자식이 왜곡해서 그렇게 느꼈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 마음이 아팠다고 말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 말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뒷말까지는 기억이 없다"

 라고 할 문제가 아닌 거지요.


기억에 있든 없든 부모라면 

"아이고, 그랬니? 미안하다. 기억이 다 나진 않지만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거야. 

엄마는 너를 무척 사랑했어. 그래도 미안하다" 

라고 해야 합니다.

 

말로 갈등을 풀어 가기란 참 어렵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한 대화를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픔과 상처가 있었다면 부모에게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을 하고 대화를 통해 자녀만 바뀔 것이 아니라 부모-자녀간에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끝.